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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철이] Lec 26 - 과학의 형이상학

[과철이] Lec 26 - 과학의 형이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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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김영 교수님의 과학의 철학적 이해 23-2 의 Lecture note 입니다.

과학의 형이상학

Karl Popper : 모든 좋은 과학 이론은 일종의 금지이다. (당위적 의미가 아닌 물리적 불가능성을 의미한다)

인간에 대해서는 제한 조건의 의미

불가능성의 3가지 종류

논리적 불가능성 : 모순이 나타나는 말 (P & not P ) : 둥근 사각형과 같은.

물리적 불가능성 : 물리 법칙과 세계의 구조가 함축하는 관계 : 광속보다 빠른 우주선

기술적 불가능성 :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술, 공학적 한계 : 지구를 관통하는 구멍

이를 뒤집어 3가지의 가능성을 만들 수 있음.

  • 과거로의 시간 여행 (논리적 가능, 물리적 불가능, 기술적 불가능)
  • 토성의 인간 거주지 건설 (논리적, 물리적 가능, 기술적 불가능)

예술과 과학의 형이상학

형이상학의 반대말인 경험 과학(empirical science)

  • 금반지에는 구멍이 있는데, 이는 금과 마찬가지로 금반지에게 본질적인 것. (본질 : 그 것이 없으면 존재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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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이 없다면 순금은 반지가 될 수 없으므로, 빈 구멍(빈 공간, 아무 것도 아닌 것)이 금반지의 존재에 본질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본질적으로 무가 유에 참여하고 있음.

우리의 현실적 삶에서는 잘 의식하지 못하거나 그 가치를 평가받지는 못하지만, ‘비현실의 영역’(몽상의 영역)이 언제나 본질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음각의 현실 (빈 구멍, 쓸모 없음의 영역, 몽상의 영역, 비현실의 영역으로 예술, 인문학이 관련된다)

이는 인간은 몽상의 존재이기 때문에. 즉 존재하지 않는 것을 끊임없이 상상하는 존재(의식, 비의식 혹은 반의식적(의식과 비의식을 왔다갔다 하는 것)으로 끊임없이 멘탈 시뮬레이션을 하도록 만들어진 존재)

인간도 현실과 비현실의 영역을 동시에 보면서 삶의 모습을 만들어 나간다.

경계의 형이상학

금반지의 표면은 어디에 속하는가?

금덩어리의 표면, 빈 공간의 표면에 속한다 할 수도 있으며, 양 쪽 동시에 속한다고 할 수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다.

과학이란 ’금반지의 경계면’과 같은 이중성(duality)를 가짐.

현실과 현실 너머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면을 인식하고 밝히기 위해서는 양쪽 모두를 동시에 볼 수 있어야 한다.

현실에 매몰되어서는 현실의 경계를 인지할 수 없으며, 그에 따라 현실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살과 피를 가지고 현실 세계를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우리가 과학을 하기 위해서는 정신(상상력, 몽상)을 통해 현실 세계를 벗어날 줄 알아야 함.

현실 세계를 벗어나도록 하는 과학적 상상력(몽상, 비유, 연상)의 대표적 방법이 과학적 이상화(scientific idealization)이다.

  • “개미는 베짱이가 없다면 평생 자신이 일만 하고 산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현실 세계 속에 매몰되어 살아가고 있으나, 양쪽 세계를 동시에 보는 능력이 없음.

  • 관성 운동은 이상화된 관념(idea)로, 현실 세계 어디에서도 그 것을 경험할 수 없다.

과학이 드러내는 것은 현실의 극한이자 존재의 극한.

현실 세계의 존재할 수 있는, 존재하는 운동들을 수렴시키다 보면, 그 현실 세계의 끝에 경계면에 형이상학적으로 관성 운동이 존재한다.

경계적 과학의 중요성 : 세포막은,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것과 동시에 안과 밖을 통하게 해야 한다는 점에서 개념적 모순적 역할을 안고 있다.

과학의 핵심적 함축은 ‘겸손’. 인간에 대해서는 cannot의 경계를 밝히는 것이 과학

과학에 대한 일반적 통념, 논리실증주의

결국 과학의 현실적 위력은 커져 왔고, 사람들읜 ’과학의 특별한 지적 지위’를 점점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과학의 본질적 특성

  1. 경험적 확실성 : 과학 지식은 명백한 경험적, 사실적 근거를 가진다.
  2. 논리적 체계성 : 과학 지식은 논리적, 수학적 체계를 이루고 있다.
  3. 누적적, 축적적 발전 진보 : 과학 지식은 경험적 확장과 논리적 확장에 의해 진보한다. (다른 예술, 정치 등과 다르게 현재의 것이 이전 것 보다 좋음. 꾸준히 발전)

논리실증주의

일반적 통념의 극단화가 바로 논리실증주의 그룹.

과학지상주의, 과학적인 것이 아니면 모두 제거되어야 한다. “과학 = 논리적 + 실증적”

18세기 계몽주의의 계승으로, 서구 문명의 위기에 대한 radical 방식의 대응

중간 점검

과학에 대한 일반적 통념은 ’귀납주의’로 요약

과학의 핵심적 방법 및 논리 = 귀납법이며, 논리실증주의는 이러한 통념의 확인

칼 포퍼는 일반적 통념 비판, ’귀납법 = 과학의 논리’라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 주장.

연역(반증의 논리)만이 유일한 과학의 논리

듀엥 - 콰인 입론

과학이 실제로 포퍼의 말처럼 작동한다 보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과학이 꼭 연역논리적(반증의 논리)으로 작동하지는 않는다는 것.

흰 까마귀가 존재한다고 해서 ’모든 까마귀가 검다’는 일반 법칙이 무너지고 폐기되는 것인가?

일반적으로(논리적 관점에서) 그렇다. 반례에 직면한 귀납적 결론을 수정되어야 하며, 귀납의 원리에 따라 새로운 귀납 추론을 해야 함. 포퍼의 반증주의 또한 동일하게 주장. (반증된 가설을 즉각 폐기해야 한다.)

실제적 관점에서 흰 까마귀라는 반례에 직면했다고 가설을 즉각적으로 폐기하지 않으며, “보수적 대응”이 일반적.

기존의 가설이 유지하는 틀에서 대응(반례에 대한 관찰 보고, 초기 조건, 보조 가설등의 의심) 이 실제 과학 활동이 수행되는 방식이다.

과학적 가설이나 이론은 개별적으로(독립적으로, 단독으로) 테스트 될 수 없다.

실제로 실험을 수행하였을 때 반대 결과(반례)가 나오는 경우, 가설 H ^ 초기조건 ^ 보조 가설이 거짓이 되는 것이지, 가설 H 자체가 부정되었다(반증되었다)고 볼 수 없다.

반대로 말해서 개별 가설의 탓으로 돌릴 수 없으며,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전체에서 무언가 부정적 결과의 원인이 있다”는 것 뿐이다.

  • 티코 브라헤는 연주시차가 관측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동설을 포기하였다. 그러나 보조 가설인 “연주시차가 관측되지 않음”이 잘못된 것이지 지동설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님. 티코 브라헤는 지동설의 즉각적 반증을 선언하기보다는 더 인내했어야 했다.
  • Newton 법칙에 입각한 천왕성의 궤도 추정에 오류가 발견 -> 이를 인내하고 (태양계 행성의 수효에 대한 보조가설의 문제로 보고) 새로운 행성인 해왕성 발견.

실제 과학 활동에서는 어떤 것을 반례로 인정할지, 인정하지 않을지 확정지어 말할 수 있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음.

실제 과학 활동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연역논리, 귀납법이 아닌 더 포괄적이고 다른 관점의 접근이 필요해 보임. (과학활동이라는 것은 실제 인간이 수행하는 것이므로 우리의 사회적 뇌, 본성을 고려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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