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철이] Lec 24 - 귀납법, 연역에 대한 논리적 고찰
Precaution
서울대학교 김영 교수님의
과학의 철학적 이해
23-2 의 Lecture note 입니다.
귀납법
modern science가 확연히 구분되는 특징은 경험적 기초와 토대가 확고하다는 것이다.
프란시스 베이컨 : 새로운 과학 방법으로 실험 관찰에 근거한 귀납법을 주장.
연역적으로 타당한 논증은 지식의 범위나 내용을 확장시키지 못한다. 연역 논증의 결론들이란 단지 그 논증이 전제들이 말하고 있는 내용들 만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베이컨의 주장 : 새로운 지식 얻고 진보하기 위해 경험적 지식을 확장시켜 주는 새로운 논리, 귀납법이 반드시 필요.
귀납의 원리
보편 법칙으로 일반화 되기 위해서 3가지 조건이 만족되어야 함.
- 일반화의 기초가 되는 관찰 진술은 수적으로 많아야 함
- 관찰은 다양한 조건 아래에서도 반복될 수 있어야 한다.
- 받아들여진 어떠한 관찰도 도출된 일반 법칙과 모순되어서도 안된다. (반례가 존재하면 안됨.)
이를 요약한 귀납의 원리는 : 많은 수의 A가 다양한 조건의 변화 아래에서 관찰되고, 관찰된 모든 A가 예외 없이 B 성질을 가지고 있다면 모든 A는 B라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음.
수적으로 많다는 것이 어느 정도의 기준이 있는가?
과학적 탐구의 진행
베이컨의 관점(귀납법의 관점). = 오늘날의 일반적 관점.
과학 탐구는 중립적인, 면밀한 실험과 관찰. (경험적 데이터의 수집)으로 시작한다.
이 때 권위, 고정관념, 편견, 감정, 이해 관계 등을 철저히 배제, 탐구 문제와 관련된 데이터를 가능한 많이 수집.
귀납을 통해 일반화를 시도하는데, 과학적 가설을 만들고, 이를 시험한다. 실험과 관찰 또한 경험적 데이터를 이용하여 검증하게 되는데 (이러한 검증 또한 귀납, (가설연역적 방법)), 이것이 통과되면 연역에 의해 현상을 예측하고 설명할 수 있음.
과연 귀납법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귀납적 비약 : 논리적 관점에서 타당한(valid) 논증이라면 그 논증의 전제가 참일 경우 그 결론도 필연적으로 참이다. 그러나 귀납 논증은 이러한 특성을 가질 수 없다.
귀납 논증의 전제들이 참이어도 그 결론은 필연적으로 참일 수 없다.
- 러셀의 칠면조 (364일 9시에 모이를 줬더라도, 추수감사절 당일은 아닐 수도 있다..). 귀납 추론은 반드시 ’논리적 비약’을 포함한다.
- 여러 까마귀들이 검다는 사실로부터 모든 까마귀는 검다는 논증을 입증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모든 사례들에 대한 주장은 이제까지 관찰된 사례 + 아직까지 관찰된 사례이 포함되므로, 아직 관찰되지 않은 사례들에 대한 주장을 할 수 없음. (논리적 비약이 포함되어 있음.)
수많은 관찰 사례들을 모으고 그 수를 늘린다고 해도 그로부터 귀납 추론에 대해 일반 법칙의 참을 입증, 검증할 수는 없다.
귀납의 문제에 대한 몇가지 대응들
확률(개연성)의 물러섬
귀납의 원리를 개연성에 대한 주장으로 수정하는 것. 관찰 사례들이 추가됨에 따라 그 법칙이 참일 개연성이 점점 더 증가한다고 보는 것.
그러나 일반 법칙의 개연성이 증가한다고 할 수 없는게, 일반 법칙이 함축하고 있는 아직 관찰되지 않은 사례들의 수효는 원리적으로 무한함.
자연의 한결같음 ‘uniformity of nature’ : 귀납법을 신뢰할 수 있는 까닭은 자연이 한결같기 때문에, 자연을 지배하는 법칙 및 자연의 진행 과정은 과거, 미래에나 근본적으로 한결같다는 주장.
그러나 타당한 주장이 아니다. 이 말 자체가 이미 귀납 추론의 결론이므로 타당하지 않음.
귀납법에 대한 실용적 정당화 : 귀납 추론은 결국 논리적 비약을 포함할 수 밖에 없으며, 거짓인 결론을 도출할 위험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으나, 많은 사례에 바탕을 두고 신중히 적용될 떄 거의 문제가 되지 않음. 즉 실제 적용에 있어서도 대단히 유효하며 논리적으로는 정당화될 수 있으나 실제로는 정당화 될 수 있다는 주장.
“이제까지의 경험 상 ~~” 의 문구에서 이미 귀납적 추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음.
데이비드 흄 : 귀납법에 대한 회의주의 (귀납법에 대한 어떠한 정당화 시도도 순환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귀납법의 정당성을 증명하기 위해 그 문제가 되고 있는 순환논증이 논리적으로 오류가 된다. 즉 귀납법 자체를 미리 증명하고 귀납법을 이용해야 하는데, 귀납법을 증명하는데 귀납법을 사용하므로 순환 논증이자 선결 문제 요구의 오류임.
흄의 결론은, 귀납법은 논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귀납적 사고와 행동 반응이 그렇게 추론할 수 밖에 없는 심리적 성향을 타고났기에 계속해서 귀납 추론을 하게 될 것이다. 즉 보수적 사고와 행동과 관련 있 있으며 이는 또한 실패와 몰락의 원인이 되기도 함.
양치기 소년는 거짓말쟁이인가.
귀납법과 사회적 뇌.
우리의 귀납적 사고와 행동은 항상 같은 방식(일정한 형식적 틀)에 따라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경험을 통해 학습한 것을 바탕으로 사고, 행동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맥락, 상황 조건에 따라 상당히 다르게 작용
귀납추론을 위해서는 어느정도의 사례가 필요한가(얼마나 많은 데이터가 필요한가?) - 대상에 따라 다르다. (상황에 따라 다르다.)
귀납적 결론을 신뢰하기 위해 반드시 충분히 많은 수의 사례가 요구되는 것이 아님. 때로는 단 몇번, 극단적으로 단 한번의 관찰만으로 귀납적 결론을 내릴 때가 있다. 반대로 섣불리 귀납적 결론을 주저하고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는 경우도 많다.
즉 대상에 따라 얼마나 많은 사례가 요구되는 지가 다르다.
양치기 소년에 대한 변론 : 양치기 소년은 억울하다
양치기 소년은 어떻게 거짓말쟁이의 대명사가 되었는가?
양치기 소년의 우화와 같은 일이 실제로 발생될 수 있는가?
왜냐면 인간의 본성을 고려했을 때 실제로 발생하기 어려운(불가능한) 이야기를 만들어 놓고 양치기 소년을 거짓말쟁이의 대명사로 부르는 것이 아닌가.
실제 삶에서 사람들은 귀납적 추론에 의해 이렇게 판단하고 행동할까? 즉 전형적 귀납적 추론에 의해 양치기 소년은 완전히 거짓말쟁이라고 판단할까?
실제 일이었다면..? 한번 거짓말을 했을 때 큰 벌을 주거나 교육하고 다시 기회를 주었을 것. 특히 또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되면 양치기 소년은 추방당하거나 교체되었을 것. 양치기 소년의 세번째 외침은 기회조차 없었을 것.
사회적 뇌(사회적 지능)를 고려할 때 실질적으로 발생이 불가능한 일. 양치기 소년을 판단할 때 우화에서는 전형적 귀납적 추론에 따라서 판단을 하지만, 실제 현실속 사람들은 전혀 그렇게 하지 않음.
사회적 뇌의 관점에서 판단 대상이 자연적 대상이 아닌 인간인 경우 ’귀납적 인내’는 비대칭성을 보인다.
’귀납 추론’을 하는 방법 : 대상(상황)에 따라 다르게 작동하는데, 사회적 상황(타인에 대한 판단), 이외의 상황들, 자연적 사물등에 따라 다르게 작동한다. (형식논리적 추론인 연역마저도 다르게 작동한다.)
귀납법에 대한 진화적 관점
귀납법의 적용 방식, 귀납 추론(경험에 기반한 추론)을 하기 위해 사례의 수효는 위험에 대한 진화적 ’평가’를 반영.
위험한 대상을 여러 번 경험해야만 그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학습한다면, 유기체는 생존에 대단히 불리할 것.
- 어린아이가 뜨거운 난로를 만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한 두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지, 반복적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이 아니다.
- 어떤 대상이 위험하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유기체 진화과정에서 자연선택에 의해 결정된 것. (예) 뱀, 거미에 대한 본능적 경계는 우리의 환경에서의 중대한 위협이었기 때문에.
즉 대상의 위험도와 필요한 사례의 수효는 반비례하며, 판단의 지지 강도는 비례한다.
우리가 진화한 환경에서 가장 위험한 대상은 무엇인가? 바로 타인이다.
우리는 타인에 대한 판단에서 부정적 결과가 예견되는(위험 신호가 감지되는) 경우에는 귀납적 인내를 하지 않고 거의 한 두번의 사례를 통해 빠르게 결론에 도달한다. (위험(비용)에 따른 비대칭적 판단)
우리의 뇌는 사회적 뇌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 (연역 추론에서도 마찬가지로 사회적 지능이 우선적으로 작용)
가설연역적 방법과 그 문제점
가설 H가 참이라면 관찰 귀결 O가 나타날 것이다. 라는 추론.
실제 실험 관찰을 통해 관찰 귀결 O가 나타나므로, 가설 H가 참이다(입증된다)라고 생각하는 방식.
Modern science의 문헌에서도 많이 등장, 일상생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방식. 한 때는 과학의 방법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상당히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오류가 숨어있는 사고 방식.
- 보일의 법칙 : PV=const, 압력을 2배로 증가시키면 부피는 1/2로 감소할 것이다. (연역적 관찰 귀결)
실제로 관찰 귀결이 부합한다 → 그러면 보일의 법칙이 참인가?
실제로 P가 2로 증가하는 경우의 실험 결과는 보일의 법칙을 입증하는가? (X)
이 추론 방법은 본질적으로 귀납적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례들 중 하나의 지지사례에 불과하므로 다른 경우에 대해서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다.
가설연역적 방법이 가진 문제점 : 대안 가설의 문제. 즉 H의 연역적 관찰귀결 도출하고 실제 관찰귀결이 참이라고 확인되어도, H가 입증된다고 말할 수 없다. 귀납적 지지 사례 한 가지를 획득하였는지 조차 불분명하다. 즉 대안 가설 H’, H’’들을 생각해 보는 것이 언제나 가능하다.
결국 시행할 수 있는 관찰은 유한할 수 밖에 없으며, 이 데이터들로 무한한 수의 그래프를 그릴 수 있으므로, 결국 이 무한한 수의 대안 가설들과 양립가능하다는 사실만이 확인될 뿐이다.
- 뉴턴의 빛 입자설. 빛은 작은 입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귀결로 빛의 반사 현상이 나올 수 있음 그러나, 이 것이 증명되었다고 빛의 입자설이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대안 가설이 가능하다.
연역논리의 오류들
우리 뇌는 연역논리적 추론을 잘 하도록 진화된 것이 아니라, 당연히도 이러한 오류를 저지르게 됨.
- 사례를 통한 기억 : 천제는 게으르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어떤 사람이 천재라면 → 그 사람은 게으르다. (전건 P, 후건 Q)
이는 논리적으로 타당함. (연역적 타당)
연역적 오류, 즉 후건긍정의 오류, ‘가설연역적 방법’ : 게으르다면 그 사람은 천재이다.
전건부정의 오류 : 반대로 어떤 사람이 천재가 아니라면, 그 사람은 게으르지 않다.
연역적 타당 (포퍼, 반증의 논리) : 게으르지 않으면 천재는 아니다.
- 날씨가 좋으면, 놀이공원에 가자; 약속을 지키는 것은, 날씨가 좋은 경우 놀이공원에 가는 것이 지키는 것이고, 약속을 안지키는 것은 날씨가 좋은데도 놀이공원에 가지 않는 것일 것이다.
일상적이지만 오류인 답변 : 날씨가 좋으면 놀이공원에 가는 것으로 했으니까, 날씨가 좋지 않으면 놀이공원에 안가는것이다.
날씨가 좋지 않은 경우에 대해 아무런 말(언급)도 하지 않음. 날씨가 좋지 않은 경우에 대한 조건을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함. (어떤 법적 계약 조건에서 구체적으로 명확히 하라는 말의 의미)
현명함의 논리적 구조
연역논리는 가치론적 함축을 가짐.
연역논리적 오류 사고에 빠져서 삶에서 올바른 가치론적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음.
-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 : 장난감이 있으면 행복할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데, 동시에 장난감이 없으면 행복하지 않을 자신을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비논리적 사고를 자기도 모르게 당연한 것으로 생각함.
장난감이 있으면 행복하다는 것이 맞더라도, 장난감이 없으면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
하나의 조건 명제에 꽂혀 다른 대안을 생각하지 못하는 아이처럼, 더욱 심한 스트레스와 압력을 받는 상황이라면 시야가 좁아져(터널 비전), 다른 대안을 보지 못할 수 있음을 깨닫고 주변을 둘러보며 여유를 찾는 일을 하는 것이 현명한 일일 수 있다.
하나의 p → q
이다에 꽂혀 ~p → ~q
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이는 논리적으로 잘못된 생각이다.
또한 하나의 p에 대해서도 엄청나게 많은 q가 있을 수도 있다.
스트레스와 압력 상황에 빠져 들어있는 경우 시야가 좁아져, 더 본능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더 자연적인 사고 경향에 따라 논리의 오류에 빠져든다.
‘삶의 깨달음’, ’현명해진다는 것’의 논리적 구조는, “이제까지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더 나은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 자신이 생각이 논리적 오류라는 것을 통해 수많은 대안(수많은 p, q)을 볼 수 있는 것.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현명하지 못한 사람(어리석은 사람)이란 스스로 파는 터널에 점점 더 깊이 빠져 들면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자인데, 터널을 파는 도구가 비논리적 사고인 것이다.
“행복의 한 쪽 문이 닫힐 때, 다른 한 쪽 문은 열린다. 하지만 우리는 그 닫힌 문만 오래 바라보느라 우리에게 다른 문을 보지 못한다.” -헬렌 켈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