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철이] Lec 17 - 근대 과학혁명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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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김영 교수님의
과학의 철학적 이해
23-2 의 Lecture note 입니다.
근대 과학 혁명 (1)
전통적 자연관, 코페르니쿠스 전환
1543년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출판, 1687년 뉴턴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프린키피아)의 사건을 통해 과학이라는 하나의 영역이 정립됨. (과학의 발명)
서구의 전통적 자연관과 우주관은, 인지유동성에서 비롯된 낭만주의적 사고방식에 바탕을 두고 있음.
-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것을 목적론적 관점에서 바라봄. (목적인)
아리스토텔레스의 5원소설, 동양의 음양오행 사상 모두 현생인류 특유의 자연적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것.
-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 시스템 (서구의 전통적인 우주관) :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모든 천체는 그 주위를 등속 원운동 한다.
프톨레마이오스의 핵심 가정 2가지를 유지하면서도 행성의 역행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가? : 주전원(epicycle)의 도입, 이심의 도입 등으로 현상을 구제할 수도 있으나, 주전원의 수효가 계속 증가하여 전체 시스템이 매우 복잡해진다.
코페르니쿠스 전환
철저한 플라톤주의자였던 코페르니쿠스의 눈에 비친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는 ‘괴물’ 그 자체였다.
고대 그리스 문헌에서 태양 중심 우주 구조에 관한 이야기를 접하고, 발상의 전환점을 발견함.
코페르니쿠스 조차도 등속 원운동의 관념에서 벗어나지는 못하여 주전원과 이심 등이 필요하였으나, 이 전환에 비견될만한 상징성과 영향력을 가지는 다른 것을 말하기는 어렵다.
인간이 우주에서 가장 가치 있는 존재이자, 우주의 목적이라는 전통적인 관념이 밑에서부터 무너지게 된, 변화의 신호탄.
근대 과학 혁명 (2)
코페르니쿠스의 체계가 남긴 연주시차의 문제.
당시 관측도로는 관측될 수 없었으며, 실제 거리가 당시 추산보다 훨씬 멀었다.
19세기에 이르러서야 향상된 관측을 통해 측정할 수 있었다. (베셀, 1938)
연주시차가 측정되지 않았다는 것은, 지동설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데에 커다란 장애가 됨.
티코 브라헤 (위대한 관측가) : 지동설이 받아들여지는데 큰 지연을 시킴.
점성술사였던 티코 브라헤. 미래를 별을 통해 예지
새로운 별의 관측을 통해 새로운 별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 증명. (천상계는 완전하므로 천체에는 변화가 없다는 오랜 생각을 반박, 수정천구라는 관념 폐기)
맨눈으로 관측하였으나 경이로운 정확성으로 엄청난 데이터를 가짐. (이를 통해 케플러 역학 탄생)
연주시차 관측이 안되었기에 코페르니쿠스 체계가 관측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함.
티코 브라헤는 자신의 관측결과를 공유하지 않았으며, 비밀스러운 중세 점성술사로서의 mind, 관측 결과가 인간의 운명(가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봄 (사실과 가치가 결합된것에서 벗어나지 못했음.)
티코 브라헤와 케플러의 관계는, 사제관계가 아님. 티코가 갑자기 사망하며 케플러에게 모든 관측 자료를 넘김.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 : 관측 자료(경험 데이터)가 동일하다고 동일 이론이 귀납적으로 추론되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케플러 : 신학적, 신비한 이유로 우주의 조화를 찾으려 함.
5가지 종류의 정다면체만 존재하는 것으로부터 6개의 행성을 지닌 우주 (태양 중심의 우주)를 설명하려 함.
근대과학이 추구하는 물음 (how question)이 아님.
그러나 케플러는 관측 결과를 통해 등속 원운동이라는 관념을 포기하고, 부등속 타원운동의 케플러 법칙을 탄생시킴.
근대 과학 혁명 (3)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의 새로운 천문학이 받아들여지기 힘들었던 이유는, 오직 새로운 천문학(우주 체계)를 위해 지금까지 의심의 여지 없이 받아들이고 있던 전통적 세계관, 인간관, 가치관을 희생하는 것은 쉽지 않았기 때문.
주된 걸림돌이었던 ’상식’의 저항.
새로운 과학으로의 전환을 위해 가장 필요했던 것은 “상식의 재교육”이다.
상식의 재교육 사례인 ‘낙하 운동’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물체보다 더 빨리 떨어진다.)
갈릴레오 (무거운 물체와 가벼운 물체는 동시에 떨어진다)고 주장.
- 진자의 등시성 (진자 운동) : 진폭, 진자의 무게에 따라 진자의 주기(왕복시간)이 달라질 것이다라고 생각하지만, 진자의 길이에 의해서만 좌우된다.
- 투사체의 운동
모든 운동은 그 원인을 필요로 하며, 물체를 움직이고자 하는 동안만 움직인다는 상식에 부합한 것이다.
관성의 원리는 아주 새로운 관념이 도사리고 있는데, 운동이란 물체가 처해 있는 하나의 상태에 불과하며, 물체는 스스로가 정지상태에 있는지, 운동상태에 있는지에 무관심하다.
운동은 정지 상태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원인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어떠한 운동에는 원인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뇌의 과민반응, 인지유동성과는 달리) 단지 운동의 변화만이 원인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포물선 운동의 예시에서도, 물체의 무관심 때문에 물체는 동시에 두가지 이상의 운동에 참여할 수 있다. 이들은 서로 독립적임.
이상화 (idealization) : 감각적 경험, 상식적 경험에 반하는 관성. 관성 운동은 이상화된 관념이고 그 것을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무 데도 없다.
우리가 올바른 질문을 던지지 못하는 이유는 “운동하는 모든 물체는 결국 멈춘다” 라는 매일의 경험을 통해 언제나 관찰, 확인하는 사실로부터 이 세계의 모든 초기 상태가 모든 사물이 정지된 상태라는 전제를 가지게 되기 때문.
즉 원래 정지한 물체를 움직이게 하는 것(운동 원인) → 힘 이라는 논증은 잘못된 물음에 대한 잘못된 답변이라는 것이다.
근대 과학 혁명 (4)
갈릴레오의 피사의 사탑 실험은 실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귀류법에 의한 논리적 논증에서 온 것. 무게가 다른 두 물체를 합쳐서 낙하시키면 가벼운 물체는 무거운 물체에 의해 빨리 떨어져야 할 것이고, 무거운 물체는 가벼운 물체에 의해 늦게 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전체의 무게는 무거운 것 보다 더 무거워 원래의 전제와 모순이 생기는 것이다.
갈릴레오가 고안한 천재적 실험방법 : 경사면에서의 실험. 관찰하기 어려운 현상을 실험실 안으로 끌어들여, 실험자 스스로 조건을 조절해 가며 관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실험의 기본적인 성격.
이러한 방법은 개입이 포함된 적극적인 형태의 관찰.
modern science의 실험에서 나타나는 전형적 특성
아리스토텔레스는 경험주의자로 규정하며, 갈릴레오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실험하지 않았다고 비판.
아리스토텔레스는 실험 데이터나 관찰을 무시했는가?
그의 경험적 관찰은 natural process를 관조(theoria) 함으로 얻어짐.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에서 자연 과정에 대한 인위적 개입은 자연의 본성을 파괴하고 왜곡하는 것으로 자연의 본성을 드러내지 못함.
modern science의 실험과 관찰은 적극적 개입을 포함한다. 이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잘 드러나지 않는 것)을 관찰가능한 현상으로 만드는 것이 목적.
어떤 것을 측정가능하게 되면 새로운 분야(분과)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