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철이] Lec 09 - 인지유동성의 치명적 귀결(과도한 욕망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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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김영 교수님의
과학의 철학적 이해
23-2 의 Lecture note 입니다.
인지 유동성의 치명적 귀결
인간의 지나친 욕심이 우리가 겪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의 근원이라는 말을 들음.
‘지나침’의 기준 : 자신의 존재를 위협하는 모순적 결과를 가져오는가
‘지나친 욕심’ : 과도한 물질적 욕망을 의미하며, 이는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 생물학적 욕망 (육체적 쾌락과 즐거움을 얻는 것)
- 야식으로 치킨과 콜라를 먹는 것
- 사회적 욕망 (사회적 인정을 얻는 것)
- 명품 구매, 부자가 되기를 갈망
상징능력은 다른 존재들과 현생인류와의 결정적 차이임.
사회적 뇌 진화 과정에서 사회적 지능이 “범람” 하여 인지 유동성을 획득, 이를 통해 상징 능력을 갖게 됨.
상징 능력을 통해 현생 인류는 사물을 이용해 사회적 의도, 의미, 사회적 위치, 사회적 관계 등을 나타낼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동물이 되었다.
사물을 이용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주장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이 그것을 알아볼 수 있다고 전제한다. (다른 동물에서는 그러한 현상이 거의 관찰되지 않는다.)
- 지극히 사회적 동물인 침팬지는 서열 1위가 되었다고 해서 나뭇가지로 왕관을 착용하지 않는다.
사회적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물질 문화를 이용한다. (의사와 간호사가 각자의 직업에 맞는 의복을 입는 등)
사피엔스의 문명은 사회적 의미의 각축장이 되었다. (상징성을 드러내는 사물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현상)
현대 물질 문화의 대부분은 사회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들, 곧 사회적 의미를 나타내고 전달하기 위한 것들이며, 그러한 사회적 의미를 나타내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대규모, 극단적인 모습으로 물질에 대한 극단적 집착이 나타나지는 않았을 것
- 현대 물질 문화는 무한한 ’사회적 군비 경쟁’의 장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의미, 지위, 관계 등을 눈에 보이는 물질로 나타내고 확인하는 것은 자가당착적이다. (아무리 많은 물질을 동원한다 해도 보이지 않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 존재양식이 다르기 때문) 그러나 그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기에 ’사회적 군비 경쟁’이 무한히 벌어지는 것임
“필요 이상의 것에 대한 정복은 필수적인 것의 정복보다도 더 정신적 자극을 준다. 인간은 (잉여적) 욕망의 존재이지, (생물학적) 필요의 존재는 아니다.”
-가스통 바슐라르
그러한 과도한 인간 욕망의 주된 실체는 사회적 욕망이다. (“사회적 인정 투쟁”)
- “생산은 욕망의 딸이다.”
- “사치는 문명 발전의 주된 원동력”
다른 동물은 필요한 만큼(충분히) 물질 자원을 얻고 소비하였다면, 필요를 넘어서 집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상징 능력 - 사회적 욕망의 변환기
사회적 욕망 추구(사회적 인정 투쟁)은 상징 능력을 통해 물질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변하면서 “대량 생산,대량 소비 사회”를 탄생시킴
대량 생산과 소비의 구조적 핵심은 ‘자동차’, ‘옷’ : 사람들이 끊임없이 새로운 것으로 바꾸고 (교체하고) 싶어하는 것이기 때문에
77년간 전세계 자동차 판매 1위를 유지했던 GM(제너럴 모터스) : 사람들의 사회적 욕망을 “끊임 없이” 자극하는데 크게 성공
이를 위해 “산하 브랜드 계층화”를 시작한 GM : 브랜드 차종과 가격 별로 차별화하여 사회적 신분의 차이 (사회적 계급 구조)를 반영. → 사회적 뇌를 매우 강하게 자극하게 됨.
끊임 없이 더 높은 등급의 차를 구입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게 되었고, 끊임 없이 새로운 차를 교체하기를 원하게 되었으며, 실제로 그렇게 하게 됨. (또다른 예시 : 아이폰, 애플)
현대 문명에서 사람들은 어디를 둘러봐도 옷이 넘치지만, 언제나 옷이 부족한 상황에 살고 있다.
대량 생산, 대량 소비의 구조와 직접 연관되지 않아도, 사피엔스의 사회적 욕망 추구는 대량 멸종, 생태계 파괴의 원인이 되어 왔다.
- 야생 코끼리의 멸종의 위기는 상아를 위해 불법 포획이 성행하여 벌어진 것이다. 상아 : 오로지 사회적 의미밖에 없음
과도한 자원 남용과 생태 환경 파괴는 사피엔스의 수렵채집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전통 사회 사람들은 물질에 집착하지 않았을까? (X)
- 아메리카 인디언의 <포트래취(potlatch)> 축제 : 상대방보다 더 많은 재산을 포기하거나 재산을 파괴하여 사회적 존경을 받고 위신을 세우는 축제
모든 탐욕을 제거해야 하는가? → 인지 유동성과 과도한 사회적 욕망의 추구가 없었다면, 어떠한 예술, 과학과 기술의 발전도 없을 것이다.
“현대”(modern age)의 의미
’modern’은 현재, 오늘날의 의미하는 것이 아닌 역사(시대)를 구분하는 개념
’전통 사회’와 ’현대 사회’를 나누는 기준은? : 친숙하던 자기중심적 세계가 깨지면서 자기중심성으로부터 벗어남
개인적 차원에서의 생각의 변화가 사회적 차원의 사상적 변화로 변모하게 됨
별다른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던 친숙하고 안락하던 자기중심성의 세계가 깨지고 나면, 곧바로 철이 들고 성숙,안정된 상태가 이르거나, 냉철, 현명함 등의 미덕을 갖추게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혼란과 방황 불안과 외로움(불행한 의식 과 함께 방황이 시작되는 것.)
현대의 시작 : “modern이야” → “이젠 시대가 바뀌었어, 옛날과 달라, 옛날처럼 살지 않아”
이러한 생각이 나타나게 된 시기 : 전통사회를 지배하던 자기중심적 세계관이 근본적으로 전환되기 시작한 시점
시기적으로는 약 500여년전 부터 (서구 문명을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게 한 2가지 사건:
-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의 발견, (지리상의 재발견(대항해시대))
- 1543년 코페르니쿠스 전환(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 우주관 : 천문학 혁명)
근대 초 유럽 문명의 위기 (1560~1660년) : 근대 초기 유럽의 전반적 위기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에 의해 촉발
“나는 무엇을 아는가?” ” 아무 것도 없다” (회의적, 상대주의적 관점의 미셸 드 몽테뉴, <수상록>에서)수상록>
나아가 ’현대적 방황’은 ’실존적 고민’을 낳는다. (나는 왜 존재하는가, 나는 왜 사는가, 내 삶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거꾸로 말하면, 이러한 고민들 자체가 지극히 현대적인 것이다.
현대 이전에는 본성적으로 자기중심적 존재로서, 우리에게 친숙한 세계를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자연적 사고방식에 따라 살아옴.
하지만 현대(modern age) 이후, 우리의 삶은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따져보고, 결정하여 자기 스스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 것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모두의 생각, 유일하게 바람직한 삶)
전통 사회에서는 구성원에게 명확하고 항구적인 자아 정체성(self-identity)를 부여함. 이에 대조하여 현대인은 동적이며 자신의 직업, 거주지 등 자아정체성 자체가 바뀌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
현대는 ‘전환(conversion)의 시대’로 특징지어져 옴
그러나 방황과 실존적 고민 끝에서 듣게 되는 표준적인 “현대적 권고(결론)”은 우리에게 너무나 어려운 요구이자 무거운 압박. (이러한 요구는 우리 뇌의 사회적 본성을 송두리째 거스르고 있는 것.)
이러한 요구(스스로 생각하고, 따져보고, 결정해야 한다는 요구)는 현대인에게 나타나는 정신병리학적 증후군의 주요 요인 중 하나로 보인다.(우울증, 고립감, 불안, 무력감, 상실감, 공허함, 허무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