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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퍼레이드

[독후감] 퍼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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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322 입원중인 어느 날 완독

제목

왜 이 책의 이름이 퍼레이드일까, 책을 읽고 난 지금도 그 이유를 알지는 못한다. 벌써 작년이 된 24년 4월, 훈련소를 마치고 첫 공익 근무를 가게 되면서 근무지에서 짬 날 때 읽으려고 샀던 책이었다. 그 때도 제목과 강렬한 배색에 이끌려 서가에서 책을 꺼내 보고(서점에 진열된 책이 ‘꺼내어 져’ 독자의 구매 후보지에 오르는 일도 굉장히 흔치 않은 일이다) 주목 받고 있는 신예 작가의 수상작인 책이라는 문구에 혹해서 구매했는지도 모른다.

플롯

근무지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바가 두 가지 있었다. 근무지에서 책을 읽으면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과 나의 삶의 방식과는 전혀 판이한, 자유분방한(방탕한) 삶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나와 완전히 대척점에 있는 인간 군상에 대한 묘사를 보고 있자 하니 동경과 존경심보다는 일종의 괴리감을 느꼈던 것 같다. 사춘기 시절의 내가 이 책을 읽었다면 그 5명의 인물을 동경하고 선망했을까? 일본 학생들이 기대하는 도쿄에서의 평범한 대학생활은 책에서 묘사된 대로 술과 마약, 섹스로 가득한 세상인가? 우리나라와 일본의 문화와 가치관이 비슷한 듯 하면서도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보아도 작가가 설정한 등장인물들의 라이프스타일과 가치관은 사람들에게 롤모델로 쓰이지 않고 되려 괴리감을 주는 요소로 의도되었는지도 모른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8801331

내가 다시 책을 꺼내어 읽기 시작했던 부분이 사토루의 시점(?) 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어서, 앞선 등장인물들의 내용은, 특히 미라이의 이야기는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자신이 잘 따르고 좋아하는 선배의 애인을 좋아하게 된 요스케의 이야기는 가관이다. 혼자 사는 여자를 미행하고 집으로 따라 들어가 관계를 하고, 또 그걸 내치지 않고 우유부단하게 받아주는 상대방,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셋이서 여행을 가자고 제안하는 선배와 그 여행에서 또 몹쓸 짓을 하는 요스케. 이쯤 되면 20대 대학생의 풋풋한 청춘과는 이미 거리가 멀어질대로 멀어져서, 오히려 추잡하고, 끈적한 아침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인 것 같다. 내게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를 털어놓지 못해 안달이었을 것 같은데, 요스케는 같이 사는 룸메이트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자신의 근황을 전하는 것 처럼 간단하게, 툭툭 던진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은 그 어느 사람도 진지하게 요스케의 속마음과 감정을 묻지 않고 심드렁한 것 처럼 보인다. 공감 능력이 없어서 그런거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자신들도 그 속에 자신보다 큰 덩치의 봇짐을 짊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토미의 이야기는 텔레비젼과 영화에 자주 나오는 유명인과 연애하는 일반인의 이야기이다. 솔직히 말해서 그들의 화끈한 연애사밖에 기억나는게 잘 없지만, 그녀의 어릴 적 이야기와, 당돌함으로 마루야마와 연애하게 된 과정 정도가 기억나는 것 같다. 고토의 키워드는 향수인 것 같다. 자신의 고향에 대한 묘한 그리움과, 생각들이 표현한 것으로 보아 자신의 과거와 연인과의 관계 속에서 허우적대는 무기력한 주인공을 묘사하려고 한게 아닌가 생각이 된다.

미라이는 솔직히 말해 진짜 기억이 안난다. 뭐 다시 읽어 봐야지. 내 기억에 자신의 윗집에 수많은 수상한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것을 보고는 마약의 거래처라던가, 불법유흥업소라고 생각하여 그곳에 들어가봤더니 사실은 점을 보는 점집이었다는 이야기가 아마 미라이의 이야기에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10km을 가면 다시 멈춰줘야 하는 그들의 자동차 모모코의 이야기도 이 부분에서 소개됐던 것 같다.

사토루는 공원 벤치였는지 음악 공연장 의자였는지 구석진 곳을 옮겨다니며 노숙하는 한 소년인데, 다른 동거인 중 한명이 집으로 데려온 케이스이다. 무슨 반려묘를 주워오는 것도 아니고 불쌍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출신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을 데려와 같이 살게 하는 사람도 참 이상하다. 그걸 불편하다고 내색하거나 내쫓지 않는 다른 사람들도 보통내기는 아닌 것 같다.

마지막 나오키의 이야기 부분에서는, 나오키 본인의 이야기보다는 위 등장인물들에서의 이야기가 더 진행되고 그들의 불편한 관계를 더 조망하기 위한 분량이 많았던 것 같다. 요스케의 이야기는 잘 모르겠고, 고토는 결국 마루야마의 아이를 임신했는데, 마치 역할이 바뀐 코미디 드라마처럼 마루야마는 아이를 낳기를 원하고, 고토는 지우기를 원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미라이의 찬장 속을 뒤진 사토루가 방에서 쫓겨나는 일이 생겼다. 나오키는 집앞으로 조깅을 나갔다가 비가 철철 내리는 외진 길에서 만난 우산 쓴 여자를 무심코(???) 밀어서 콘크리트로 쳐 죽여버리고 만다. 그걸 본 사람이 또 사토루인데, 신고하거나 어쩔 줄 몰라하는 것도 아니고 태연하게 피가 묻은 겉옷을 벗어버리고 다시 그들이 동거하는 집으로 돌아간다.

각 인물별로 나중에 다시 읽어보았을 때 이런 내용이었지, 하고 회고하기 위해 생각나는 대로 써 보았는데, 책의 내용 자체가 원체 난해하고 줄글로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인 내용들이 많아 앞으로 이런 주제의 책은 과감히 플롯을 생략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느낀 점

내가 살고 있는 세계와는 상이하고 괴리감마저 느껴져서 중간 즈음에서 책을 그만 읽자고 다짐하고 한동안 서가에 꽂아만 두었던 책이었다. 다시 읽고 결국 마무리를 지어 보니 어쩌면 이렇게 느껴지는 것 또한 작가의 의도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이라는 격언과 완전히 대치되는 묘사, 즉 개개인의 삶에 몰입하여 주변을 둘러보면 즐겁고 후회없이 살아가는 희극처럼 보이지만, 그 모든 인물을 알고 나서 시선을 넓혀 그들의 생활 공간인 방을 통해 사람들을 바라보면 전혀 깊고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 겉치레 뿐인 비극적인 그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작가는 이 아이디어를 은유적으로도 충분히 보여주었지만, 나오키가 밖을 나와 집으로 곧장 들어가지 않고 옆 건물에서 자신이 사는 집을 관망하며 직접적으로도 보여준다.

개개인은 각자의 삶에 충실하고, 같은 공간 속에서 여러 정보와 대화를 나누며 살아가지만 그들이 실제로 마음을 두고 있는 사람은 서로가 아니다. 그들은 한 집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장소만 같은 뿐 5개의 분리된 공간 속에서 따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콘셉트는 이해가 어렵지 않았던 게, 단순히 내 대학 생활속에서 919동을 썼던 모든 순간들을 돌이켜보면 될 것 같다. 고등학교때부터 친했던 지훈이를 제외하면 그 공간 속에서 만났던 룸메이트(홈메이트)들은 서로 인사하고, 어떨 때는 함께 밥을 먹고, 잡담을 했지만 정작 캠퍼스 속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더 정확히는 이해할 의지가 없는) 방식으로 살아가고,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책속에서도 각각의 등장인물들이 원래의 나를 공개하지 않고 ‘그 방에서의 나’라는 가면을 쓰고 살고있는 것 같다는 묘사가 있다.

같이 못해도 6개월은 한방 쓰면서 사는 친구들인데, 왜 이렇게 서먹하고 서로 친하지도 않은거냐고 어머니께 궁금증 반 잔소리 반의 책망을 들었던 적이 있다. 내가 그들에게 먼저 선을 긋고 친해지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한 것도 아니다. 먼저 필요한 일 있으면 도와주고, 함께 나누고, 말도 걸어보고 했지만 정작 그들에게 돌아왔던 건 형식적인 감사 표시와 더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암묵적인 거절의 표시였다. 자존감이 낮았을 땐 내가 하니까 그런가보다 하며 자책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별로 친하지 않은 룸메이트나 동기가 내게 말을 걸고 친해지고 싶어 할 때 나 또한 나에게 냉담했던 사람들과 똑같이 형식적인 감사와 겉치레 뿐인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같은 방을 쓰는 여자애들은 그렇게도 친해지던데 그들이 보여주는 친함 또한 보여주기식에 불과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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