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라플라스의 마녀
252315 순훈과 점심/저녁약속이 있었던 어느 토요일(아프기 직전의 그 날) 완독
제목
누가 보아도 라플라스의 악마에서 착안한 라플라스의 마녀라는 제목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이 책이 원래 유명한 책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음에도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는 것은 잘 지은 제목이라는 뜻이 아닐까
플롯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라플라스의 악마와 같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인물이 등장한다. 더 정확히는 ‘마녀’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그 주인공은 여자이다(물론 같은 능력을 가진 남자도 있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진 소녀. 무슨 양산형 웹소설에서 나옴직한 싸구려스러운 아이디어를, 히가시노 게이고는 세련된 전개와 접근으로 독자의 궁금증을 자극시킨다. 장면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이 바뀌며 역동성을 주는 연출은 이제는 나름 흔하지만, 작가는 처음부터 방대한 세계관과 여러 등장인물을 쉴틈없이 소개하여 독자에게 혼란과 피로를 부과하지 않았다. 다만 씨앗이 움트고 그 안에서 싹이 자라나 가지를 치는 것 처럼 작은 사건과 이야기로부터 점점 다양한 등장인물이 얽히고 문제가 자라나는 것을 그저 독자들에게 숨죽여 보여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이야기들 간의 연관성과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에 대한 기대를 자연스레 가지도록 하였다.
…
느낌
책이 두꺼운 것에 비해 쉽게 읽히고,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한 눈에 들어오는 친숙한 이름이 아님에도 누가 누구인지, 어떤 관계인지 즉각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동안 추리소설을 많이 읽으면서도 이 장르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는데, 작가가 감도 오지 않는 여러 단서들과 힌트들을 작가 나름대로 책 곳곳에 심어두고, 독자는 생각도 못할만한 신박하고 기발한 정답을 줄줄히 나열해서 유추하고 맞춰 볼 엄두조차 나지 않는 것이다. 어려운 문제를 풀으라고 제시해두고 그럴싸한 답을 제시하며 자신의 지적 수준을 자랑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힌트를 통해 알아맞춰보라는 식으로 제시하지 않고, 그저 보여준다. 상황들이 제시되었을 때 내가 추리한다, 유추한다는 자각을 하기도 전에 사건들의 퍼즐을 끼워맞추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쉽고’ 대중적이면서도 이러한 장르의 본연의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잘 만들어진 책이다.
개연성이라고 한다면, 이미 ‘라플라스의 악마’가 존재한다고 전제된 시점에서 따질 필요가 없긴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너무 억지를 부리거나 부자연스러운 개입이 있지도 않았다. 흥미로웠던 것은 결국 고전역학의 난제인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을 해결하는 것으로 그들의 시선이 이동했다는 것이다.
→ 추가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감성이 있다. 특유의 스타일 때문에 좋다고 하는 사람도, 질려서 더는 안보겠다는 사람도 있다. 지금 이 글을 덧붙이고 있는 6월 27일, 녹나무의 파수꾼을 읽고 있는 중인데 다른 사람들이 왜 그런 평가를 내리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근데 나는 시간 죽이기 좋은 책이라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 주지는 않지만 읽음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책